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13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180819 대학청년예배

 

설교 : 박한상 목사

제목 : 함의 눈 라아하(ראה)

본문 : 창세기 918-27

 

일전에 대한항공 땅콩 사건이 터졌을 때 관련된 승무원들이 있었다 여자승무원도 많은 고초를 당했고 남자승무원도 부당한 말을 많이 들었다.그 남자승무원에 대한 일이 신문 기사에 실렸다. 그는 평소에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언론에 표현하기를 면구스럽고 데면데면하다고 했다. ‘면구스럽다’ ‘데면데면하다무슨 말인지 아나? 그 승무원은 크고 잘생겼다 그래서 누구나 나에게 말을 걸어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늘 눈빛이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고 빚나가게 보거나 위로 보거나 아래로 본다 승무원이라 고객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잘해야 한다 고객에게는 그렇게 하는데 다른 승무원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사이에선 굉장히 면구스럽고 데면데면하다고 했다.

 

오늘 창세기 9장에 나오는 노아 함 야벳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한다. 이 설교는 청년부 여름 수련회에서 했던 창세요리라는 것이 있다 창세기를 압축 요약해서 줄거리를 잠시 이야기 했다 그중에서 창세기 9장을 조금 뛰어넘었는데 오늘 하려고 한다.

노아에게 세 명의 아들이 있다 셈, , 야벳이다 잘 알 듯이 첫째와 셋째가 아버지의 노출된 하체를 보고 뒷걸음질 쳐 그 하체 위에 자기의 옷을 덮었다 둘째 함은 그렇게 하지 않고 아비의 하체를 보고 형과 동생에게 아버지의 하체에 대해 이야기했다 노아가 깨고 난 뒤 좋은 일을 한 셈과 야벳에게 칭찬하고 잘못을 범한 둘째 함에 저주하지 않고 함의 네 아들 중 막내에게 저주했다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10:6)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 셈, , 야벳에게 복을 주신다 하나님이 복을 주었기때문에 영감이 충만한 노아는 함을 저주할 수 없다 하나님의 참된 종은 하나님이 복을 명한자에게,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에게 결코 저주하지 않는다 다윗이 자기 목숨을 여러번 빼앗길뻔 했지만, 사울이 지속적으로 다윗을 죽이러 했지만 다윗은 사울이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임을 확실히 알았기에, 기름부음받은 사울을 공격하는 것은 하나님을 공격하는 것이라 알았기에 다윗은 사울에게 직접 해악을 끼치지 않았다

당장 목을 잘라도 될만큼 자기 굴 안에 들어와서 찌르기만 해도 끝나는 그 때에도 오히려 증표를 취하기 위해 옷자락을 자르기만 했을 뿐 사울에게 직접적 해악을 끼치지 않았다 그뿐아니라 사울왕이 죽었을 때에도 다윗의 절친 요나단도 죽었다 그날에 다윗은 자신의 친구 요나단의 죽음보다 사울왕의 죽음에 더 슬퍼하고 애도를 보냈다 왜? 누가 하나님이 세웠는가 누가 기름부음 받은 자인가 누가 정말 복을 받은 자인가 알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청년대학 여러분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에 대해 아무짓 하지 말라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도전일 수 있고 여러분이 하는 모든 행동이 하나님을 향한 행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 곳곳에 이런 부분이 나온다

이런 영적 사실을 잘 아는 노아는 함이 자기를 향해 나쁜 짓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함을 향해 저주를 베풀지 않는다 오히려 함이 아닌 그의 아들 가나안에게 저주한다 가나안의 입장에서 억울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분이 명심할 것이 있다 하나님은 정직의 하나님, 공평의 하나님, 인애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이유 없이 가나안을 저주하신 것 아니다 성경에 가나안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을 상고하는 자로서 성경을 유추하고 성경을 따라가다보면 가나안에 대해 알 수 있다 성경에는 가나안 족속 가나안 지역에 대해 나온다 성경에 나오는 가나안 족속과 가나안 지역에 대해 보면 가나안이 어떤 사람인지 살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진리는 아니지만 도움을 주기에 이야기한다

가나안 족속이 가는 곳곳마다 이스라엘 사람이 그들의 우상과 패악으로 인해 이스라엘 족속이 물든다 열왕기 사사시 역대기 등 가나안족속이 지나간 지역에는 이상한 일들이 생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범죄 흉폭함 요즘 문제가 되는 동성애를 가나안 족속이 가나안 지역에서 일으키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 땅이 가나안 족속이 있었던 지역이다 소돔(sodom)y를 붙이면 소도미(sodomy, 동성애)이 되고 소도미에서 y를 빼고 ite를 넣으면 소도마이트(sodomite, (남성)동성애자)가 된다

왜 하필 소돔이라는 땅에 동성애자가 많았을까? 왜 하필 소돔과 고모라가 하나님이 저주하시고 망하는 대표적 지역이 되었나? 그리고 구약 곳곳에 나오는 가나안 지역과 가나안 족속이 계속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지역은 왜 가나안이란 이름을 붙었을까? 추정해본다면 노아로 인해 저주받은 것도 있겠지만 내 생각에는 셈과 함과 야벳이 보기 전에 먼저 가나안이 할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자기 아비 함에게 말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다시 살펴 보건대 함은 무슨 잘못을 했나?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함이 무슨 잘못을 했나? 함의 잘못은 사실 큰 것은 없다

 

9:22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개역한글)

“Ham, the father of Canaan, saw his father's nakedness and told his two brothers outside”(niv)

וַיַּ֗רְא חָ֚ם אֲבִ֣י כְנַ֔עַן אֵ֖ת עֶרְוַ֣ת אָבִ֑יו וַיַּגֵּ֥ד לִשְׁנֵֽי־אֶחָ֖יו בַּחֽוּץ׃ ”(히브리어)

 

하체를 보았다’ ‘형제에게 고했다두가지 행동이 나온다 보았다를 영어로 찾으면 ‘see’이다 히브리어로 쓰여진 구약성경에서 ‘see’를 찾아보면 ‘raah’(ראה) 라동사가 나온다 라동사는 단순히 보다가 아니다 소파 밑에 동전이 굴러 가면 어떻게 하나? 손전등을 키고 유심히 살피며 짝대기로 끄집어낸다 그것으로 안되면 소파를 뒤집고 찾을 때까지 소파 밑을 유심히 살펴본다 유심히 살펴보는 그것이 라동사이다 함이 노아의 하체를 볼 때 소파 밑에 들어간 동전을 찾듯 유심히 살펴본 것이다

영어에 ‘glance’‘look at’이라는 동사 있다 ‘glance’는 슬쩍 보는 것이다 자매가 잘생긴 형제를 볼 때 유심히 보나 슬쩍 보나? 슬쩍 본다 반대로 형제는 예쁜 자매를 볼 때 슬쩍 보나 유심히 보나? 유심히 본다 그 차이이다 함이 아버지의 하체를 볼 때 그냥 본 것이 아니라 비정상적인 것이다 유심히 보며 온갖 상상 다하고 쳐다보는 것이다 우었을 수도 있고 자기 나름대로 소설 썼을 수도 있고 자기 아버지와 상관 없는 온갖 상상 다하며 쳐다보는 것을 라동사라고 한다 그러니 그 자리에서 떠난 다음에 두 형제에게 어떤 말을 했겠는가?

반면에 두 형제는 쳐다보지 않는다 만약 봤다면 옷을 덮기 위해 슬쩍 쳐다봤을 것이다 아비의 하체를 본 것이 아니라 그 하체를 덮기 위해 위치만 보는 것이지 함의 ‘raah’(ראה), 함의 ‘look at’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함의 잘못은 여기에 있다 다른 목적으로 보는 것이다 아비의 하체를 아비의 하체로 본 게 아니라 온갖 상상하며 본 것이다 나의 영감은 여기에 이어졌다 틀리길 바라지만 아마 함의 그런 눈빛이 가나안의 그런 눈빛이었을 것이고 함과 가나안의 그런 눈빛이 그 족속들에게 흘러 간 게 소돔과 고모라가 아닐까 그리고 여호수아 사사기 열왕기에 나오는 수많은 광폭함 흉폭함 남색 등 그 죄의 처음 시작이 창세기 9장의 ‘raah’(ראה) 라동사 함의 눈빛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함의 눈빛이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성경은 마태복음 6장에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한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6:22-23)

눈이 몸의 등불이다 여러분이 여러분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을 어떻게 보느냐는 각각 다르다 서인천 사건을 보면서 언론의 시각은 아 교회가 나쁘구나라고 보지만 우리의 눈은 저 가족이 정말 큰 피해를 받았겠구나 그 아이들의 미래는 얼마나 안타까울까? 그 아이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야겠다고 하는 것이 정상 아니겠는가? 아니면 반대로 잘했어 너희들이 응분 당할 걸 당했어세 가지 눈빛이 있다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은 어떤 눈빛 갖고 있나?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이다 예수 어떻게 하셨나? 예수는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우리 모두의 죄, 우리 후손들의 죄, 어떤 죄든 예수께서 다 담당하셨다 그럼 우리가 예수를 볼 때 어떤 마음 들까? “우리 인간은 연약하구나 죄 안짓는 인간이 없구나라는 긍휼이 들지 않을까? 오히려 함처럼 너도 죄를 지었으니 나도 죄를 지어도 되는구나 하나님께서 살인죄도 용서하시니 나도 살인죄 지어도 되겠구나라는 눈빛으로 바라보나? 우리는 예수를 바라보면서 나의 연약함과 함께, 나의 부족함과 함께 다른 사람의 연약함과 지극히 죄를 질 수 밖에 없는 것(how sinful)을 보면서 동시에 누구를 보나? 하나님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광대한지 하나님이 우리를 용납하고 안으시고 체휼하고 긍휼하심이 얼마나 큰지 아는 것이 우리의 눈빛 아닐까? 우리의 눈빛이 바뀌면 함의 눈빛이 된다 사랑과 긍휼의 눈빛은 사라지고 율법과 양심의 눈으로 들이밀고 정죄한다 율법과 양심 앞에 깨끗한 자 그 누구가 있녀는 것이다

정신 차리자 우리가 다른 사람 볼 떄 내 눈에서 판단과 정죄의 눈빛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눈빛이 아닌 함과 가나안의 눈빛이다 주 예수께서 죄가 많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눈빛으로 우리가 영혼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그렇지 않은 것이 창세기 9장에 나오는 함과 가나안이다

함의 눈빛이 나오는 라동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창세기 3장으로 거슬러 간다 창세기 3장에 하와가 선악과를 볼 때 라동사가 나온다 하나님은 창세기 2장에도 선악과에 대해 말씀하시지만 창세기 2장에선 라동사가 나오지 않는다 창세기 6장에 나왔던 함과 가나안의 그 눈빛이 창세기 2장에는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2:16-17)고 하신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말씀을 주신다 듣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 나무 열매 먹지 말라 했으나 안먹으면 된다 여러분이 생각할 때 먹지 말라 했으니 가서 따지 않으면 되고, 따도 먹지만 않으면 된다 그러나 정말 영감 있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는 사람은 따지도 않고 쳐다 보지도 않고 가까이 가지도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헌금하라 했으면 당연히 십일조 하는 것은 맞는 것인데 헌금하는게 맞냐 안맞냐 성경과 책을 뒤져 따지는 사람이 합당한 자인가? 하나님이 헌금을 하라 하셨으니 헌금과 심일조하는 게 당연하고 마음과 심령과 믿음 다해 몸과 혼과 육과 정신 다해 십일조 하는게 맞나?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A를 하지 말라 하셨으면 A 근처에 있는 것까지 심지어 B, C까지 아예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의 합당한 태도이다

그런데 마귀는 그 틍 깨뜨린 것이다 야 정말 먹지 말라 하더냐그 말이 들어오니까 하와의 머리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던 것이 깨지게 되고 뱀의 목소리가 들어오니까 뱀의 목소리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이 깨진 틈을 타서 하나님이 명하신 선악과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함이 아비의 하체를 계속 본다 보고 또 보면 수많은 상상이 떠오른다 하와가 선악과를 본다 평소에는 보지도 않았다 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다보면 따지도 않고 근처에 가지도 않았고 쳐다보지도 않았는다 그런데 뱀의 목소리가 들려오니 가까이 가게 되고 쳐다보게 되고 상상하게 되고 결국에는 그것을 따게 되는 것이다 함과 가나안의 눈빛에 나오는 라동사가 창세기 3장에도 나왔다 마침내 따먹었다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וַתֵּ֣רֶא הָֽאִשָּׁ֡ה כִּ֣י טוֹב֩ הָעֵ֙ץ לְמַאֲכָ֜ל וְכִ֧י תַֽאֲוָה־ה֣וּא לָעֵינַ֗יִם וְנֶחְמָ֤ד הָעֵץ֙ לְהַשְׂכִּ֔יל וַתִּקַּ֥ח מִפִּרְי֖וֹ וַתֹּאכַ֑ל וַתִּתֵּ֧ן גַּם־לְאִישָׁ֛הּ עִמָּ֖הּ וַיֹּאכַֽל׃

 

 

하나님이 간음하지 말라 말씀하셨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아 나 저 여자와 간음하지 말아야지하고 계속 쳐다보라 어떻게 되나? ‘간음하지 말라고 했자나요 안하면 되잖아요하고 계속 쳐다보면 이 사람은 간음하지 않아도 음란한 곳에 가서 음란한 짓을 할 것이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한 것은 안하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이 하라고 하셨으면 철저히 하면 된다 하나님이 십일조 하라 하셨으면 억지로 안하면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3:23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23:23)

 

우리 마음을 보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우리의 영혼을 보려고 하는 것이지 십일조를 얼마나 하나 동작을 보려 하심이 아니다 그러니 간음하지 말라 하셨으면 아예RM 근처에도 가지 말고 쳐다보지도 말고 문자도 하지 말고 아무 액션하지 말고 아무것도 안하면 된다 간음하지 말라는 그것만 지키고 온갖 짓을 다하다보면 결국 마귀의 틈에 빠져 함과 가나안이 저지른 눈빛에 빠져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읽은 창세기 9장에 나오는 그것(ראה) 이 거슬러 올라가면 하와의 눈빛에 똑같이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부탁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면 그 말씀을 변계하지 말자하나님이 100을 하라 했으면 120을 하자 고등학교때 생물 선생님이 항상 말씀하기를 너희가 120점 맞을 각오로 하지 않으면 100점 못 받는다고 했다 그런 정신으로 가르치셨다 그래서 온 반이 생물점수가 95~99점이었다 120점을 목표로 하다보니

하나님이 하지 말라 했으면 120프로 안하면 되고 하나님이 하라 했으면 120프로 하면 된다 그런데 우리는 마귀의 그 경계까지 간다 함과 가나안의 눈빛의 경계까지 간다 그것은 함과 가나안으로 끝나지 않는다 거슬러 올라가면 하와의 눈빛에서 시작된 것이고 하와의 그 눈빛은 누가 준 것인가? 뱀이 준 것이다 마귀가 준 것이다

그런데 이 눈빛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6장에 네피림 사건 나온다 네피림 사건이 나올 때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할 때 그 눈빛 또한 라동사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면 영감 있는 자들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냥 보면 되는데 그들을 계속 쳐다보는 것이다 머리 속에 온갖 상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집중하고 상고하고 파고 들어가면 시무언처럼 될 것인데 반대로 악한 쪽으로 하와의 눈빛을 갖고, 함의 눈빛을 갖고, 가나안의 눈빛을 갖고 온갖 상상하며 봤던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마침내 취한 것이다

여러분에게 부탁한다 이곳은 교회이다 여러분 옆에 있는 사람 우리 모두 의인이 아니다 죄인이다 예수의 피가 없으면 다 죽는다 예수의 피가 없으면 죄인 중에 죄인이다 쓰레기이다 예수의 피가 없으면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 예수께서는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했다 우리가 우리의 동료들을 예수의 눈빛으로 보지 않고 함과 가나안의 눈빛, 하와의 눈빛, 창세기 6장에 나오는 눈빛으로 보면 성할 사람 아무도 없다 모두가 다 쳐죽여야될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나? “내가 너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으니 이제는 율법이 아닌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율법이 우리를 쳐죽이는 형벌이 아닌 예수의 보혈의 은혜로 충만한 자로 여기도 예수의 피가 있구나 사랑스러 운 자요 여기도 예수의 피가 있으니 하나님의 자녀요 내가 사랑하고 아낄 사람들이구나이렇게 되는 것이지 판단하고 비판할 존재로 여러분 옆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남을 비판하고 정죄할 의무가 없다 오직 한 가지 의무가 있다면 오직 사랑할 의무 밖에 없다 여러분이 갖고 있는 모든 함의 눈빛, 가나안의 눈빛, 창세기 6장에 나오는 눈빛 버리자 말씀이 나오지 않는다 은혜의 말씀이 나올 수 없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 가까이에 있다 여러분이 복을 받는 최고의 방법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믿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것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최고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

들춰내고 떠벌리는 그 자가 바로 함이다 함은 자기가 본 것을 그대로 보지 않았고 그 뒤의 수 많은 것을 상상하고 끄집어내어 말했다 그러니 그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은 늧과 저주이며, 늧과 저주의 전달자가 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늧과 저주를 전달하라하신 적 없다 오직 우리 입술에는 억울할지라도 하나님의 복을 전달하는 자 하나님의 복음을 전달하는 자 하나님의 복과 복음의 전달자가 되라 너희는 예수의 증인이 되어야지 율법의 증인되느냐고 말씀하시지 않겠는가? 주님은 먼저 우리의 눈빛이 바뀌기 원하신다 캠퍼스와 목장 가운데 부족한 자 있으면 그 부족한 자를 부족한 자로 보지 않고 복과 복음의 눈으로 보라 그 사람 언젠가 하나님이 쓰실 자이다 그 사람에게 예수의 피가 있으면 하나님이 반드시 그를 쓰실 그 무언가가 있는데 그가 발견하지 못하고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예수의 피는 있지만 성령으로 인해 그가 하나님을 향해 쓰임 받을 그것을 우리가 찾아내지 못했을 뿐이다 우리는 이 사람이 정말 사랑스럽고 축복 받아야할 대상이고 복음을 전달받아야할 대상이지 그들의 늧을 발견하고 떠벌리고 그들의 저주를 온천하에 선포해선 안된다

여러분 jtbc 되지 않길 바란다 우리 눈에는 오직 주 예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대로 눈은 몸의 등불이라” “내 영혼의 등불이라말씀하신다 여러분에게 그런 예리하고 날카로운 눈빛 있다면 성경을 보라 성경을 집중해서 보고 하나님의 뜻을 보고 찾으려 하자 그래야 우리가 승리한다

정말 안타까운 것이 무엇인가? 함과 가나안이 크게 실수한 것이 있다 (아버지의 하체를) 봤다 상상 다했다 그러면 아버지를 신뢰할 수 없다 그들의 아버지 노아는 어떤 사람인가? 유일하게 남은 영적인 후손이다 노아는 창세기 1, 3장을 봤다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짓밟아 버릴 것이다라는 원시복음을 듣고 본 자이다 창세기 6장에 나오는 네피림 사건을 받은 자인다 유일하게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자가 노안인데 둘째인 함은 노아의 설교가 노아의 복음의 메시지가 노아를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말씀이 들어오지 않을 뿐 아니라 가나안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자기 후손에게 영향을 미쳐 온 후손이 그 지역 전체를 더럽히는 역사책에 기록된 자들이 되었다

이 주일 설교 놓고 가장 많이 기도한다 여러분은 피어나는 베뢰아 성락교회의 미래세대 역군이다 여러분 여러분 스스로를 양육해야 할 뿐 아니라 장차 결혼하고 그 후손에게 가르쳐야 한다 나는 내 후손에게 위대한 영적 흐름과 영적 유산을 양육하리라그것이 최고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혼자 살겠다 안타까운 것이고 자식을 많이 낳겠다 복 받은 것이다 자식을 낳아도 함과 가나안 같은 자식으로 양육하면 큰일 난다

여러분 설교를 들을 때마다 영혼에 새기고 육체의 후손에게 새겨 주라 이들에게 너는 절대 늧과 저주를 전달하지 말라 함과 가나안의 눈빛을 가지지 말라 창세기 6장의 눈빛을 가지지 말라 오히려 너는 복과 복음의 전달자가 되어라 생명의 전달자가 되어라 세상이 무너지는 그 역사의 현장을 보고서도 오히려 희망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말할 수 있는 성락교회가 무너지는 것 같지만 아니다 오히려 이때부터 하나님이 당신의 일을 영적인 일을 베뢰아운동을 새롭게 시작하리라는 것을 그런 눈빛을 가지게 하도록 기도하고 영감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나느 2018년을 보는 것이 아니다 2038205820782098년을 본다 여러분의 후손을 바라본다

여러분이 정말 은혜 많이 받고 여러분의 영혼에 이 말씀을 새기고 여러분의 후손에게도 이를 잘 전달해주길 바란다 절대 늧과 저주의 전달하는 자가 아니라 복과 복음을 전달하라 복과 복음을 전달하기 위해 먼저 무엇이 중요한가? 내 눈빛이 중요하다 내가 어디를 보느냐? 내가 어떻게 보느냐?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보물과 같이 여기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복의 말씀만 있나? 아니다 경고의 말씀, 약속의 말씀도 있다 경고를 지워버릴 것인가? 경고를 지우면 우리가 경고를 받지 못하기에 또 실수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이 왜 이스라엘 왕들의 패역함과 죄가 들어간 열왕기와 역대기를 기록해두셨나? 하나님의 경고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경고도 보물처럼 껴안아야 이것이 나에게 피와 살이 되어 나를 더 악한 길로 이끌어 가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눈빛으로 말씀을 더 사랑하고 말씀 속으로더 깊이 들어가야 하는데 오히려 다른 사람의 하체를 뒤집어 보는 라동사로 바라보면 여러분의 가정도 망치는 것이고 여러분의 후손도 망치는 것이고 여러분이 나중에 무슨 교회를 새롭게 개척할지 모르겠으나 그것 역시도 망치게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서 사람의 눈은 그 몸의 등불이라하셨으니 여러분의 눈빛이 여러분의 영혼이 정말 복과 복음으로, 하나님의 영감으로 충만하기 바란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5 20181014 대학청년 예배_박한상 목사_성경책이 무거운 이유_갈 3:14 설교정리 2018.10.23 67
4 20180902_대학청년예배_박한상 목사_함의 입은 조상이 있다_창 9:18-27 설교정리 2018.09.23 70
3 20180916_대학청년예배_박한상 목사_개미와 공작_욥40:1-9 설교정리 2018.09.17 95
» 20180819 함의 눈 라아하 (창9;18~27) 박한상 주일 주일요약 2018.08.25 135
1 20180805 예수, 귀신아 귀신아 부르시다 막5;1-20 박한상 주일 16431 2018.08.16 142
Board Pagination Prev 1 Nex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