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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박한상 목사

제목 :예수, 귀신아 귀신아 부르시다

본문 : 마가복음 51-20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소속 민속학자인 무라야마 지준이 1929년에 발행한 조선의 귀신이라는 책 안에는 조선사람들이 귀신을 의존하고 무서워하고 그것들을 이겨내기 위해 수많은 무당과 부적, 스님들을 가까이 했는지 씌여 있다. 조선의 선비 대부분은 귀신에 대해 글을 써왔다 왜? 삶에서 백성들이 늘 만나는 부분 중 하나가 귀신이었기 때문이다.

금오신화를 쓴 김시습은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된다. 그 귀신이 오래 되면 귀가 된다고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유명한 학자도 사람이 죽으면 그 혼령이 귀신이 된다. 살아 있으면 사람이고 죽어 있으면 귀신이다라고 했다.

구약 39권 중 귀신이란 단어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신약 27권에 귀신 100번 나온다. 구약 당시엔 귀신을 감추어 놓았던 신약에 와서 왜 하필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하나님으로 이 땅에 오셨을 때는 그토록 귀신에 대해 많이 언급해놓으셨는가?

종교라면 오히려 귀신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더 고급지고 멋있고 신뢰가 간다. 귀신은 눈에 안보이기 때문에 안보이는 이야기를 쓸 필요 없다. 그런데 주님은 안쓸수 없고 기록하지 않을 수 없고 심지어 쫓아내어라고 명령까지 하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시기 이전에 아무리 뛰어난 자라 해도 귀신을 제어하거나 들어낼 힘이 없다. 신이 아니고 하나님의 종, 사람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직접 오셨다. 예수 이름으로 친히 몸을 입고 오셨다. 영적 세계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예수 공생애 사역 전 광야에서 40일 마귀에게 시험받지 않았나? 공생애 시작할 때부터 사람들이 각색 병든 자, 귀신 들린 자를 데려 왔다. 말씀을 가르치시며 귀신을 쫓아내고 귀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너희도 귀신을 쫓아내라고 하셨다.

주님 당시 신앙생활하던 자들의 한 부분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었는데 2018년을 살고 있는 우리 삶 가운데 귀신이 어떻게 다가와 있는가? 불이 꺼진 음습한 곳에 수많은 귀신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오셨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 만난 귀신은 단 한번도 장소에서 나온 귀신이 없고 지하 공간 음습한 곳에서 나온 귀신은 하나도 없다. 모두 다 어디에서 나왔는가? 사람에게서 나왔다.

이 세상의 흐름은 사람들에을 향해 죽음에 대한 무서움을 던짐과 동시에 쉽게 만나지 못하지만 성경에는 분명히 있는 존재, 예수께서 분명히 지적하고 언급한 귀신에 대해 끊임없이 존재한다. 우리가 온 세상 어디에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귀신이 출몰하는 곳은 전설의 고향에서 나오는 허름한 집, 지하방이 아닌 사람에게서 나온다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바다.

마가복음에는 다른 어떤 성경보다 귀신에 대해 가장 많이 말한다. 마가복음은 16장에 불과하며 가장 먼저 써진 복음서로 알려져 있다. 마가복음이 나온 뒤 사람들이 읽고 덧붙여 쓴 것이 왕의 입장에서 쓴 마태복음, 의사의 심정으로 쓴 누가복음, 요한이 모든 복음서 본 뒤 영적인 것을 쓴 것이 요한복음이다.

짧은 마가복음에는 귀신이란 단어가 많이 나온다. 마가복음 5장에 나오는 구절들을 다시 상기해보자. 예수께서 평소 사역하던 장소가 아니다. 일부러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 동편으로 건너가셨다.

배를 타고 건너 가기 전에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는 모습이 나온다. 강을 건널 때 바다와 풍랑이 일고 바다와 풍랑을 잔잔케 하신다. 마침내 거라사 지방에 도착했다. 무덤가에 있던 귀신들린 자가 먼저 예수를 알아보고 예수께로 달려오는 것이다. 이 귀신들린 자는 사람들이 수갑을 채워도 쇠사슬로 매도 안될 정도로 힘이 세고 자기 몸을 돌로 치는 자였다. 그가 예수께 달려 와서 큰 소리로 무르짖어 가로되 직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 있나이까? 원컨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한 사람이 누구일까? 귀신들린 사람인가? 귀신 들린 사람 속의 귀신일까?

나를 괴롭히지 마소서라고 했으니 사람일 수 있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어떻게 알까? 처음 만난 사람이다. 저 바다 건너 남쪽에 있던 사람이 오는데 자기 안에서 점점 떨리는 것이다. 귀신이 이천마리 있으니까 그 이천마리 가 평소에 만나지 않았던 다른 사람이 오고 있는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라고 말한다. 그 이름을 어떻게 알았을까? 도대체 누구길래 ? 처음 만났던 이 사람이 예수 께서 먼저 말한다. “더러운 귀신아 이 사람에게서 나오라귀신 들린 자가 말한다 내 이름은 군대니이다 우리가 많기 떄문입니다

자기를 이 지방에서 내어 보내시길 간절히 구한다. 여러분이 이 현장에 있다고 생각해보자. 여러분이 귀신들린 자이든, 귀신이라고 생각해보자. 하나님의 아들이 온다. 예수께서 귀신들린 자 안에서 귀신이 들어났는데 안쫓고 일부러 피하여 가시겠는가? 아닐 것이다. 당연히 쫓아낼 것이다.

귀신의 입장에서 자기들이 이 사람에게서 반드시 떠나가야 할 것을 안다. 그리고 귀신의 입에서 나온 말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우리가 무슨 상관 있나이까 두려워 할 정도로 한다.

귀신이 떠나가면 음부에 120세까지 머물 것이다. 여기 있는 귀신이 몇 마리인가? 군대는 레기온이라 하여 인원이 2000~4000이 된다고 한다. 이 귀신들이 다 나가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 속에 들어가겠는가? 예수께서 이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낼 필요가 없다. 쫓아내면 한 사람 안에 있던 이천명이 어디로 가겠는가? 그러면 안쫓는게 나을 것이다. 한 사람만 고생하면 되니까

그런데 지금 이 귀신 들린 자 앞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이다. 예수라면 다른 사람 속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지 않을 것이고 120세 나이와 상관없이 바로 무저갱으로 내쫓으실 것이다.

이 본문과 병행되는 마태복음, 누가복음에 보면 무저갱으로 가라는 말이 있다. 이는 너의 운명이 끝났으니 사람 속에 가지 말고 무저갱으로 바로 가라는 것이다. ?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그런 권세가 있기 때문에 이천명의 귀신이 사람들 속에 떠돌아 다니지 아니하고 바로 이 속에 집어 넣으실 수 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귀신이 자기를 이 비장에서 내어 보내지 아니할 것을 간절히 구하더니 마침 산빝에서 돼지들이 먹고 있다. 12절에 우리를 돼지에게로 들어갈 것을 허락하소서한다. 예수꼐서 허락하심과 동시에 귀신 하나가 돼지 세네마리 속에 들어갈 수 없고 한 마리 속에 들어갈 수 밖에 없으니 이천마리 안에 들어간 이천명 귀신이 바다를 향해 달려가 몰살한다.

예수는 귀신을 쫓아내시는데 그 귀신을 쫓아낼 때 당연히 무정갱으로 가라 명령하지 아니하면 또 다른 사람에게 갈 것을 아신다. 그래서 다른 복음서에는 무저갱으로 가라 하셨고, 이들은 무저갱에 들어가기 이전에 잠깐이라도 또 다른 육체 안에 들어가기 원하기 때문에 귀신들이 돼지 떼 안에라도 들어가게 해달라고 몸부림쳐서 주님이 그것을 허락하시니 돼지들이 벼랑으로 떨어져 죽는 것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배울 것이 많다. 귀신은 처음부터 뭐였는가가 문제가 된다. 귀신이 누구냐? 귀신이 정체가 뭐냐? 라는 것을 찾을 수 있다. 한 때 감신대의 최대광 교수라는 부이 계셨다. 한국교회가 귀신론으로 시끄러운니까 전국 전세계에 있는 모든 귀신론을 끄집어다가 연구했다. 제일 크게 대별되는 것이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불신자의 사후 존재, 불신자의 악령이 귀신이라는 큰 덩이 하나와 죽은 사람이 아닌 타락한 천사가 귀신이라는 대별점을 들고 왔다. 인문학 강좌처럼 많은 사람 앞에서 강좌를 한 적 있다. 이때 그가 무슨 말을 했는가 하면 예수 당시 신약성서 당시에는 신약성서 문화와 관습에 의하면 사람이 죽으면 바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혼, 신으로 떠돌아다닌다는 것이 당시의 풍습이라고 했다. 병의 원인을 죄와 함께 귀신때문이라는 것이 당시의 문화였다고 말한다. 이런 견해에 의하면 김기동의 불신자 사후 존재는 귀신이라는 것은 어느정도 일리는 있다는 말을 했었다.

이 사람이 하지 않은 말 중 한가지가 무엇이냐? 많은 기독교에서 카톨릭의 여향과 함께 귀신을 타락한 천사로 본다. 원래 기독교에는 천사란 개념이 없었다. 하나님 아니면 마귀 즉 선과 악 밝음과 어둠 광명과 흑암 두 개의 대비점으로 나눠놨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오신 다음부터 흔들리는 것이다. 예수께서 왜 귀신을 쫓으셨는가 하는 것은 성경을 많이 공부한 유대인들도 신기하게 생각하는 분야이다 그래서 지금도 연구한다. 그런데 그들은 귀신을 천사로 본다. 천사가 귀신이라 한다면 생각해보자. 천사 중 귀머거리되고 벙어리된 천사를 성경에서 본 적 있는가? 신약성경에 귀신이란 단어가 100번 천사란 단어가 138번 나온다. 훨씬 더 천사가 많이 나온다. 그 많은 천사 중 장애가 있는 귀신이 등장하지 않는다.

히브리서는 처음부터 우리에게 말한다. 천사는 육체가 아니라 존재의 본질상 근원의 기본적 원리상 영이라고 말한다. 영이기에 썩을 것이나 병들 것이 없다. 귀먹거나 눈 멀 필요가 없다.

 

또 천사들에 관하여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셨으되”(1:7)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1:14)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천사는 본질적으로 영이라는 것이다. 우리처럼 육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영이기 때문에 썩을 필요가 없고 늙을 필요가 없고 영원히 살 수 밖에 없는 본질적 속성을 갖고 있다. 그런데 왜 병들고 왜무둥병이 되고 장애인이 되는가?

마가복음 5장에 귀신이 어떻다고 말하지 않는다. 마가복음 9장에는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는 장면이 나온다. 마가복음 5장과 9장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무리 중에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벙어리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 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쫓아 달라 하였으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저가 땅에 엎드러져 굴며 거품을 흘리더라 예수께서 그 아비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가로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예수께서 무리의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귀신이 소리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9:17-27)

 

5장과 9장에는 다른 성경에는 없는 귀신을 부르는 예수님의 목소리가 있다. 예수께서 신기하게 바다를 잠잠하게 하도 풍랑을 안돈시킬 때 바다야 풍랑아 조용히 하라 하지 않은셨다. 부르지 낳고도 조용히 하고 평안케 하셨다. 그런데 귀신을 향해서는 귀신아 하고 아 라는 호격 조사를 붙이셨다. 일부러 부르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여기에 모여 있다. 예수를 가장 싫어했던 바리새인들도 있고 성경에 능통했던 사두개인들도 있다. 심지어 이 앞장에는 예수께서 귀신 쫓는 모습을 보고 다른 바리새인들이 와서 예수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나쁜 사람이다 라고 비난할 때 예수께서 왜 사단이 사단을 쫓아내냐? 나쁜 놈이 착한 놈을 쫓아내거나 착한 놈이 나쁜 놈을 쫓아내거나 서로 세력이 다른 색깔이 다른 존재가 쫓아내는 것이지 왜 사단이 사단을 쫓아내나? 성령으로 쫓아내는 것을 은근히 이야기 하신다. 수많은 사람 앞에서 예수께서 보여주시고 모든 사람이 귀신의 존재를 인식하도록 그동안 수많은 선지자와 모세와 엘리야도 있었지만 영적인 활동을 하고 도단성에서 수많은 천사를 본 엘리사도 귀신을 본적도 만난 적도 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허풍쟁이라 말하는 예수 앞에서는 유독 귀신이 들어나는 것인가?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만 나타내면 될텐데 왜 하필이면 귀신을 드러내는가?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 3:8)

 

예수께서 열두제자를 부르실 때 원하신 것은 세가지이다. 첫째, “나와 함께 하사예수와 함께 있게 하시려고 열두 제자를 부르셨고, 두 번쨰 그들로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세 번째 귀신을 쫓는 권세를 주셨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3:13-15)

 

귀신 안쫓아도 기독교 전할 수 있다. 지금 수많은 기독교가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데 왜 기록하셨나? 제자들을 부를 때 세 번째 조건으로 귀신 쫓는 권세를 주셨는가?

헤롯왕이 예수에 대해 조사해보라 시킨다. 많은 사람이 왔을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너 여우(헤롯)에게 가서 말하라 내가 첫날에는 귀신을 쫓아내고 둘째날에는 복음을 전할 것이고 셋째날에는 완전하여 지리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의 공생애 3년인데 그 3년을 3일로 나눈다면 하루는 귀신 쫓은 것이고 하루는 복음 전한 것이고 하루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완전한 그 일을 말한다. 그만큼 당신의 사역 가운데 당시 시대 신앙생활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 귀신 쫓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다른 교회는 안하고 왜 우리교회는 하냐는 것이다. 왜 그토록 해야 하냐고 원로감독님이 말씀하시며 왜 우리 교회가 왜 이단 시비를 받아가면서 이것을 지키냐 하는 것이다. 지금 마가복음 5장과 9장에서 드러내신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크다. 단순히 귀신만 쫓으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곳곳에게 인식시켜주는 것이다. 귀신은 어떤 자인가? 예수께서 무덤가의 귀신을 향해 무서운 귀신 두려운 귀신 힘센 귀신이 아니라 사슬과 쇠고랑을 끊는 귀신이 아니라 무슨 귀신이라 더러운 귀신이라 하셨다. 주님은 더러운 귀신이라 말씀하신다. 귀신은 육체가 없기 때문에 더 이상 회개할 방법이 없고, 하나님께로 돌아갈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에 주님의 눈에는 완전히 더러워진 것이다. 다시는 꺠끗케할 방법이 전혀 없기에 주님의 첫 번째 표현은 더럽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러운 귀신아 라는 표현이 그토록 많이 나온 것이다. 주님의 보혈과 주님의 이름이 없으면 더러운 것이다. 마가복음 5장에 더러운 귀신아 마태복음 벙어리되고 귀먹은 귀신아라고 부르시는 것이다.

안불러도 된다. 안불렀으면 제자들인 안부른 이름으로 그냥 귀신을 쫓았다고 기록했을 것이다. 그런데 일부러 귀신아라고 부르셨다. 마가는 아 자를 기억한 것이고 그 호격조사를 써넣은 것이다. 가장 많이 귀신에 대해 기록한 것이다. 주님의 사역 중에 귀신 쫓는 것은 잊어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자를 부르실 때도 귀신에 대해 말씀하셨고, 헤롯왕에게 보고서를 쓸 때에도 귀신 쫓아내고 복음 전하고 내가 삼일에 완전해지리라 하셨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쌔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16:17-20)

 

믿는 자라면 누구든지 귀신을 쫓아내고 무슨 독을 마셔도 해를 입지 않고 뱀을 집으며 방언을 말하며 천하만민에게 복음을 전하고 믿게 해라 그리고 믿는 자는 귀신 쫓아낼 수 있다는 표적을 말하고 있다. 다른 교회 하지 않는 일을 굳이 우리교회는 하고 있다. 누가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이며, 하나님이 가까이하시는 교회일 것인가?

귀신은 천사가 아니다. 천사는 본질 자체가 완전한 영이기 때문에 썩거나 죽거나 병들거나 하지 않는다. 사람이기 때문에 병들고 죽고 눈이 먼다. 귀신이 왝체 안에 들어가려 하나? 귀신의 본질이 천사가 아니기 때문에 영이 아니기 때문에 근원적 존재가 육체 속에 있다 보니 육체를 사모하는 것이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11:24-26)

 

나온 곳도 사람이고 들어간 곳도 사람이다. 분명히 알아야 한귀신이 가고 싶어하는 곳은 육체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육체에 들어가려 힘쓴다. 돼지 떼 육체 속에 짧은 순간에라도 들어가려는 것이다.

귀신을 쫓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의 보혈을 가진 자가 예수의 이름으로 그 이름을 힘입어 다른 어떤 방법도 없는 것이다. 다른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 이야기 할 때 우리교회는 예수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이라고 강조하는 것은 예수를 우리가 붙들어야 하고 예수 보혈이 우리에게 최고로 소중하고 그 보혈 없이는 구원의 시작도 안되고 예수 이름이 그만큼 소중하기 때문이다. 예수 이름을 우리 심령에 깊이 붙잡아 하나님의 아들이 약속한 모든 능력을 소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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