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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1:1-3)


1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2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왜 능력이 안 나타나느냐?


그렇게 <권능을 받으라> 하는 책을 썼는데, 그것을 읽으셔도 신문지 읽듯 읽으니까 그래요. 


왜냐면, 어떤 사람이 귀신들렸는데, 귀신이 쫓아내는데 안 나가죠? 그 원인이 무엇이냐 말이에요. 


그 병든 사람의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그 사람에게 믿음이 없으면 귀신이 그 안에서 도사리고 앉아서 꼼짝하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믿음이 있으면, 그 속의 귀신이 견딜 수 없는 것이에요. 




무엇을 믿느냐?


몇 번 반복하여 왔지만, 곧 "이 말씀이 하나님이시다!"하는 요1:1의 말씀처럼, 말씀이 하나님인 줄 믿어야, 병든 사람이 그것을 믿을 때, 그 속의 귀신이, 그 사람의 믿음으로 인해 깜짝 놀라서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믿음이 없으면, 귀신이 거하는데 유리하고 편안하죠. 귀신이 들어있기가 아주 편안한 것이거든요. 그러니 귀신이 나갔다가도 물이 없는 곳을 찾아다니다가 있을 곳을 찾지 못하고 ‘차라리 내가 나왔던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다시 들어온단 말이에요. 사람 몸에서 나갔던 귀신이 사람 몸으로 다시 들어온다 이거야. 거기 뭐라 그랬어요? 물이 없는 곳으로! 진리가 없는 말씀이 없는 곳으로 다니다가(이미 그 당시에는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막 말씀들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귀신이 여기 가도 불편하고 저기 가도 불편하니,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하고 다시 들어온다 했어요. 들어 올 때는 쫓겨날 때 혼자 약해서 쫓겨났는데, '나 좀 강하게 해야 하겠다.' 해서 저보다 악한 귀신 일곱을 데려오니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해지니라 했습니다. (마12:43-45) 바로 그 귀신이 들어가고 싶은 곳은, 믿음이 없는 곳에 들어가고 싶은 것이에요. 그곳은 자기 밥이죠. 자기 안방이죠. 




 믿음이 뭐냐?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


제가 그토록 설명해도, 제가 가지고 있는 영감과 제가 설명하는 이야기를 아직도 못 알아듣는 것 같아요. 하나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 관념 속에 있는, 내가 맘대로 생각할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잖아요. "하나님은 정말 유일하시다!"말이에요.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시고 영원토록 사시는 분이요, 전능전지하신 분이요, 그는 정말 인간을 사랑하시고 도우시는 분이시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가 그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했죠?


하나님의 말씀은, 없는 것도 있게 하시니 있게 된단 말이에요.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생겨납니다. "궁창이 있으라!" 하니 떡같이 있던 흑암이 고무풍선이 불어나듯 궁창이 생깁니다. 그분의 말씀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분의 말씀이 그대로 다 이루어진단 말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사람도 만드셨고, 우리에게 생명도 부어주셨어요. 그 말씀이 곧 생명이라 하지 않아요?? 그 말씀이 생명인데 그 말씀을 거둬 가면 우리 생명이 끝나는 거예요.


의사가 아무리 많고 의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하나님이 더 이상 생명을 공급하지 않으면 끝나는 것이에요. 




[마태복음 8: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하나님의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시니라. 그 말씀이 하나님이신 줄 알아야 해요. 


창조도 하고, 바람도 꾸짖고 광풍도 꾸짖고, 바다 물결도 잠잠케 하고 없는 것도 있게 하고. 그의 말씀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란 말이에요.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없나이다." "그물을 깊은 곳에 내려라!"


"내가 밤새도록 수고하여도 얻은 것이 없지만은 주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


그리고 그물을 내려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물고기들을 얻었어요. 그때 베드로가,


"우리가 죄인입니다. 우릴 떠나소서!" 그렇게 할 만큼 그 말씀에 대한 권위! 하나님이시라는 거예요.




[누가복음 5: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그런데 여러분은 말씀을 하나의 덕담, 평안한 지식으로만 듣지, 그 말씀이 하나님이라 믿지 않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내게 들어오시지 않는 거예요. 계시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 귀신이 그 안에서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겁니다. 


마가복음 1장에도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 '그의 가르침이 권세 있는 자 같고, 서기관과 다른 성경을 강론하는 자들 같지 않더라.' 말이에요. 그러니까 귀신이 놀라서, "우리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고 고백한단 말이에요. "너 거기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금방 떠나간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권세 있는 교훈이로다." "그 말씀이 생명 있고 능력 있는 말씀이다. 귀신을 명한즉 귀신이 떠나간다." '이 소문이 사방에 퍼지니라.' 했어요. 




여러분이 병들었을 때, 목사님이 손만 얹으면 낫는다 하고 그것만 믿어요. 그러나 목사님의 손이 하나님이 아니에요. 말씀대로 손을 얹고 기도하는데 이 사람이 믿음이 없으면 이 사람에게 하나님이 역사하겠어요? 믿음이 있어야 함께 역사 하시고 믿음이 없으면 역사하지 않는 거예요. 불신자에게 아무리 안수해 보세요.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이 함께 역사하시죠. 


불신자에게 억지로 손을 얹으면 바위덩이 위에 손을 얹은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쭉 뭐가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데, 어떤 사람은 바위 덩어리에 손 얹은 것 같아요. 그 사람들에게 무슨 이적이 나타나겠어요? 이 세상에 불쌍한 사람, 병든 사람 많습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십니다. 안 게신 곳이 없어요. 그런데 왜 고침을 받지 못합니까? 믿음이 없으니 하나님의 능력을 영접할 수 없는 것이에요. 믿음이 없는 곳에 성령이 역사할 수 없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 말이에요 구약에 있는 율법과 선지자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 오셔서 처음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2:


49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예수의 입으로 나온 말씀과 그가 행하신 모든 것이라고 성경에 그랬어요. 내가 말하는 것과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을 아버지께서 명하셨으니 이것이 곧 영생이다. 주님의 행하신 것과 주님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은 아버지에게서 나온 말씀이다 하는 겁니다. 


'성령이 지금도 아버지에게서 나오고 계시다.' (요15:26)


그와 똑같이 하나님의 말씀도 지금도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 말씀이 하나님 이예요.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 말씀을 하나님 같이 두려워합니까? 하나님같이 공경 합니까? 하나님 같이 여깁니까? 그러니까 종교인만 되지,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이 이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절대로 능력이 없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능력 있는 교회로, 베뢰아하는 환언하는 교회로, 세계에서 우뚝 서야 할 텐데, 능력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80년대에 우리 교회가 부흥할 때 온 교인이 능력이 많았거든요.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한다 이거예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이라 확신 하니 이적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같은데 소식을 들어보면 아주 엄청난 이적들이 나타납니다. 단순하게 그대로 받아들이거든요. 그런데 지금 한국 사람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지지 않고, 신자니까 의무적으로 성경을 읽는다는 생각으로 말씀을 읽으니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말씀으로 온 세계를 지으셨다.’ 그 말씀이 여러분 속에 들어와야, 여러분 속에 암 덩어리도 녹아 나가고, 여러분 속에 들어 왔던 귀신이 자리 잡지 못하고 떠나게 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안수 아무리 받아도 소용이 없어요. 맨날 안수만 받으러 돌아다니고, 이적은 없고.


우리 교회는 이적이 없으면 베뢰아 운동 하나마나에요. 


왜냐면,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 했어요. (고전4:20) 능력이 많이 따라야 합니다.


교회는 성령이 일하시는데, 성령이 일하지 않으시면 무슨 이적이 있어요?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나 외에 다른 신은 없다. 내 앞에 우상을 두지 마라!'


우상 앞에는 얼마나 열심히 믿음과 신념을 가지고 제사합니까? 그거보다 억만 배 큰 믿음을 가져야 한단 말입니다. 그러나 우상 앞에는 그렇게 자기 머리를 조아리고. 말도 못하고 생명도 없는데, 얼마나 경건하게 합니까?




그런데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그렇게 합니까?


'그 말씀이 그대로 너를 심판한다' 했습니다.


그러면 그 말씀이 당신을 벌할 때, 그럴 줄 몰랐다고 해봐야 핑계에요. 소용없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릴 살리기도 하고, 그 말씀이 우릴 심판한단 말이에요. 그렇게 두렵단 말이에요. 여러분이 그 말씀을 공경하고 두려워하고, 그 말씀이 곧 나를 살리고 나를 심판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러니 죽어서 낙원을 통해 하늘로 갈 사람, 심판을 받아야 할 사람, 율법 아래 있던 사람들은, 똑같은 신자인데. 그리고 심판 없이 지옥 불에 들어갈 사람, 이렇게 세 가지로 나뉜다고 했잖아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하늘에 가는 사람, 그 말씀이 없기 때문에 자기가 가지고 있던 그 법에 의해서 심판을 받아야 하는 사람, 그 말씀을 무시하여 지옥에 가는 사람 이렇게 되어 있어요.




[요한복음 3: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인정하세요. 이 말씀이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명을 주시기도 하고 생명을 거둬 가시기도 하고, 천국도 보내시고, 지옥도 보내시고. 그 말씀이! 




[요한복음 12:47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심판할 이가 있으니, 내가 한 그 말이 너를 심판하리라."고 이미 말씀 하시지 않습니까?


바로 그것을 의심하면 구원받을 수 있겠어요?




[고린도전서 3:15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불 가운데서 얻는 것 같은 구원. 겨우 영이나 구원받고 영광을 받지 못한단 말이에요. 


이제부터 잘 들을 말씀은, 우리에게 돌아올 보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 말씀 앞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내 놓아야 합니다. 그 말씀을 듣고 죄를 내 놓고, 세상에서 좋아하던 것을 다 포기하고 그 말씀을 쫓아간단 말입니다. 




[요한복음 12:


47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이 말을 듣고도 여러분이 정신 안 차리십니까? 저는 나이 먹고 세상을 떠날 날이 얼마 안 남아서인지, 더 분명해 집니다. 이 말씀에 대한 경건함, 두려움. 공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단 말이에요. 


우린 하나님을 볼 수 없어요. 말씀만 볼 수 있어요. 이제 우리는 그 말씀 형상은 볼 수 없어요. 그는 하늘로 가셨고, 이제는 복음으로 들어요. 은혜와 진리로 들어요. 




이 말씀이 곧 심판하신다! 이 말씀이 곧 심판하신다! 이 말씀이 곧 심판하신다!


그것을 여러분이 명심하셔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다.


'하나님만이 심판자'라 하셨잖아요. 예수는 구원하러 오셨다 그랬어요.


예수께서 심판받지 않게 하려고 그들의 죄를 담당하려고 미리 오셔서 우릴 구원하셨다고 하셨어요. '심판하시기 전에 너희를 구원하러 왔노라.'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결국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에요. 그 말씀으로. 


지금 성경을 읽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으면서도, 그 말씀을 하나님으로 듣지 않기 때문에, 이 말씀은 하나님이라고 계속 반복적으로 말씀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여러분이 그냥 무시해 버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다!!


그 말씀이 들어오면, 이 속에서 귀신이!!


그러면 처음 나온 사람들도 귀신이 소리 지르고 나가죠. 


오늘부터 조금 더 지금까지 들어왔던 말씀에 이어서 하지만, 조금 달리 듣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선지자들과 율법이나 다 모양과 그림자로 말씀하셨단 말이에요.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마침내 그 아들이 나타나셔서 아들을 세우시는데 다 말씀하신 것이다.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이 우주와 그 우주 밖에 있는 저 하늘,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피조물을 '만유'라고 하는 겁니다. 요즘 학교에, 무기학이라는 것이 있어요. 그래서 '총 만드는 학과인가?' 했어요. 그랬더니, 눈에 보이지 않는, 공중에 이 앞에 어떤 전파가 무기질이 어마어마하게 몇 억만 개라는 거거든요. 옷을 짜깁기하듯, 몇 백만 개의 여러 가지 전파나 요소들이 짜여 있다는 것이에요. 거기서 겨우 한 가지 발견하여, 지금 전화도 하고, 텔레비전도 보고 하는 거죠. 거기서 몇 백만 개 중 그거 하나 발견하여 쓰는 겁니다. 앞으로 그것을 다 발견하면 별개 다 나올 겁니다. 그러니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그것을 찾아가는 거예요. 무기학이라고. 이것들을 다 합해서 만물이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기도 많이 하고, 믿음만 충분하다면, 하나님이 그에게 어떤 영감을 주어서 그 무기질에 대해서 딱 허락하면 노벨상을 고사하고 지구를 뒤바꿔 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셔야 하니까. 그 모든 것을 '만유'라 합니다. 




“만유의 후사로 세우사 ” 아들을.


후사는 상속자라는 말이에요. 이런 후사라는 얘기를 했더니, 우리 교회를 욕하는 사람이, 자기 아들 손자를 세우려고 그런다고.. 그렇게 사고방식이 달라요. 저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지금 내가 그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과거 하나님이, 선지자나 율법으로 여러 가지의 모양과 그림자로 설명했던 것이, 그것이 뭔지 잘 모르죠. 퍼즐 맞추는 것 있죠? 딱 딱 맞추면 한 그림이 나오죠. 전체 그림이. 이것을 수만 가지를 조립하니 하나의 그림이 되는 것이지. 그러니까 사람도 눈 하나만 가지고 사람이라 할 수 없고, 다 조립이 되어야 사람의 모양이 나오듯이, 이 모든 말씀 하셨던 것들이 아들에 대하여! 마지막 날에 아들이 나타나셨다!


구약 성경에 선지자와 율법으로 말한 모든 말씀이!!


성경에 색색 무슨 색깔로 짜고 무슨 모양을 만들고, 이것이 다 하나의 아들에 관한 예화로 든 것이다 말이에요. 그것은 마침내 아들을 만유의 후사를 상속받게 하려고. 이 땅의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마귀가 나에게 경배하면 내가 천하영광 주리라 할 때, 이 우주의 영광을 얻게 한다고 마귀가 유혹했죠. 그러나 예수는 하늘의 모든 권세를 상속받을 자인데, 이 우주 하나 얻기 위하여 마귀에게 경배하겠어요? 예수께서 네가 무슨 권리가 있느냐?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마귀는 당시에는 공중권세 잡은 자에요. 그러나 아들은 이 우주만이 아니라, 만유를 상속받은 자에요. 




하늘이라는 것은 너무 커서 그릴 수가 없어요. 우주도 얼마나 큰지 상상도 할 수 없어요. 


하나님이 하늘을 창조하셨어요. 하나님은 하늘이 없어도 존재하시는 분이예요. 하나님은 하늘을 기대고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에요. 스스로 계신 분이에요. 하늘을 의지하시는 분이 아니에요. 


벽이 있어야 옷을 걸 수 있죠. 그와 똑같이 피조물들은 무엇이 있어야 의지하고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의지하는 것이 피조물이에요. 그의 생명과 권능을 의지하는 것이 피조물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은 의지하는 것이 없어요. 스스로 있는 분이에요. 그게 피조물과 하나님의 차이예요.


물이 없어도 물고기 못 살아요. 공기 없으면 사람 못 살아요. 햇빛, 물, 공기가 있어야 하고, 하나님이 있어야 하고.. 의지해야 해요. 피조물은 스스로 있을 수 없어요. 어떻게 보면, 무식하다는 소리를 하죠. 


자연과학이라 하죠? 자연이란 말은, 틀려요. '자연'은 '스스로' 라는 말인데요. 풀도 스스로 살고 나무도 스스로 산다. 자연이라 말하거든요. 그것은 틀려요. 학교에선 그렇게 배웠어도 우린 그건 틀리다고 알아요. 성경에 그 흔해터진 단어, 자연이란 단어는 한 번도 안 나와요. 


왜? 하나님이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에요. 자연이 없어요. 전부가 다 의지해야 하죠. 만드셔야 하고, 살려줘야 하죠. 


그러나 조물주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에요. 그는 의지하지 않는 분이에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을 제일 먼저 일러주실 때 “나는 스스로 있다” 알려주죠. 




[출애굽기 3:


13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이는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라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표호니라"]




하나님만이 오히려 자연이세요. 스스로 있는 분이세요. 하나님만이 의지할 데가 없어요. 그래서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 홀로 계신 주님이라고 성경은 말씀했거든요. 홀로 한 분!


하늘이라는 이런 공간이 없어도, 의지할 곳이 없어도, 하나님은 존재하셨어요.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하늘을 지으셨어요. 이것은 아들을 위하여!!!


이것을 지을 때, 우주라는 것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 우주와 하늘과의 차이가. 


 


바알세불이라 하죠? 바알세불은 공중권세 잡은 자, 세상 임금, 우주의 공중권세 잡은 자, 용이라는 뜻인데, 노골적인 뜻은, ‘똥집주인’이라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배설물로 취급하는 뒷간이란 말이죠. 


여러분 앞마당이 커요, 뒷간이 커요?


우리 어릴 때는 밤새 변소 가려면 무서웠어요. 


자기 마당을 지나서 조그만 곳에 있으니, 밖에 누가 서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무섭거든요. 


이 바알세불이 우주의 용이라는 뜻인데, 우주가 집이라는 뜻 아니에요? 우주의 주인이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그를 똥집주인이라 말합니다. 하늘에 비해 우주는 이렇게 적어요. 그런데 이 우주가 하늘에 비해 엄청 적게 보이지만 우주가  우리가 볼 때 얼마나 큰 거냐 말이에요. 




이 우주 벽에서 반대 우주 벽으로 건너가는데, 학자들이 말하길, 우리가 어릴 때는 140억 광년이라 말했어요. 빛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구 7바퀴 반 돈다고 하죠? 30만 킬로미터에요. 눈이 제일 빨라요. 그 속도가 바로 지구 30만 킬로를 돌아요. 빛이 태양에서 오는 속도가 눈 깜작하는 속도와 같죠. 그런데 태양에서 지구로 오는 속도가 약 8분 걸린다는 말이에요. 그 속도로 우주 벽에서 다른 벽으로 갈려면, 140억 광년입니다. 그러니 이게 얼마나 넓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 것이에요. 


한 번 내가 계산을 해보니까요.


"빛이 있으라." 해서 태양에서 빛이 옵니다. 어떤 학자는 250억 광년이라고 합니다. 우주를 향해 가는 빛이 창조로부터 지금까지 3분의 1을 못 갔어요. 전부가 깜깜합니다.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검습니다. 


지금도 아직까지 못 왔어요. 그러니 이 안에 별들이 얼마나 많은지 상상도 못하거든요. 별 하나에 별 무더기, 은하수라 하죠. 한 은하수 안에 지구의 일억 배의 넘는 별이 이천억 개가 넘는 별이 있답니다. 


이런 은하수가 몇 개냐? 이천억 개가 또 넘는답니다. 그러니 이 검은 하늘에 엄청나게 많아요. 이렇게 멀고 큽니다. 이것이 바로 우주에요. 계속 팽창하는 것이에요. 고무풍선마냥. 


어느 때 이것이 끝나고, 순간 팍 줄어들 때, 어느 정도이냐?


학자들에 의하면 지구가 블랙홀에 말려들 때, 순간에 탁구공 마냥 하다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순간에 끝나는 날이 온다는 것. 


이 우주를 하늘에서 보면, 이것은 바알세불의 집, 똥집주인이다. 


바알세불은 똥파리라고 하죠. 그러니 말하자면 똥파리들이 끼는. 


똥파리라는 말이에요. 그런 신이에요. 


하늘을 창조할 때, 여기다 하나의 우주를 미리 계획을 하셨어요. 창1:1흑암을 창조하셨어요. 하늘을 만들어 놓고, 수천 천군천사들, 하늘의 군대와 하늘의 천사들이 수를 셀 수없이 꽉 차있죠. 그래서 성경에 구름 같다 했어요. 하늘 구름 같다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4:14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그는 하늘 구름위에 있는 분이시다.


구름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입자가 모여서 떠다니죠?


그러니 천사가 얼마나 많은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이렇게 많은 천사가 그 아들을 수종을 들도록, 아들이 하는 일을 도와 드리도록. 


하늘과 함께 만들어진 피조물들이 천군천사들입니다. 


천사들은 사람보다 훨씬 먼저 만들어졌죠. 사람이 천사만 못한 것은 시공간을 초월하지 못한다는 것. 천사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시간 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에 벽이 아무리 있어도 소용이 없어요. 아무리 두꺼운 바위도 초월하니까. 지금 신길 본당이 공장 뭐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많은 사람이 소리 지르고 찬송하는 소리가 밖에 안 들리죠? 그게 뭐냐 하면, 벽이 그냥 벽이 아니에요. 그게 납으로 다 둘러싸여 있어요. 비싸게 돈 주고. 무게가 소리를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스펀지 아무리 두껍게 해도 소리 못 막아요. 소리 막을 수 있는 것은 납밖에 없습니다. 납으로 온통 완전히 두른 것이에요. 납판으로. 그냥 다른 건물 같은 것이 아니에요. 그러니 굉장한 건물입니다. 


그게 납이 두껍고 무거우니까, 소리가 뚫지 못해요. 그러나 천사는 다 초월해 버리니 소용이 없어요. 그래서 인간보다 훨씬 우월하단 말이에요. 그러나 천사와 사람은 달라요. 




[히브리서 1:


4 저가 천사보다 얼마큼 뛰어남은 저희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5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


6 또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 말씀하시며


7 "또 천사들에 관하여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였으되"]




천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어요. 그냥 종이에요. 빌2:6이하에 천사보다 조금 못한 사람이라 말하죠? 천사보다 인간은 시공간을 초월하지 못해요. 공간이 막혔으면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고, 이렇게 제한을 받는 것이 인간입니다. 천사는 시공간을 초월하지만, 하나님이 천사들에게 어떤 약속을 하신 적이 없어요. 천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도 없고, 종이에요. 그러니 지금 첫 언약 안에 있을 때,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은 천사의 인도를 받으니, 천사한테 "주여, 주여" 하잖아요?




천사들이 다 직분이 있죠. 


여호와란 이름을 가진 자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할 수 없어요. 천사가 얻은 이름보다 더 뛰어난 이름을 기업으로 얻은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에요. 예수!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아들에게 주셨어요. 천사보다 뛰어난 이름! 여호와라는 이름을 가지고는 인류를 구원할 수 없는데,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이름. 예수라는 이름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 하는 이름으로 아버지의 사랑이라 이 말이에요. 아버지가 사랑하심으로 인류가 구원받는 것처럼 그 이름이 인류를 구원한다는 것은 아버지가 사랑이라는 겁니다.


예수는 그 이름을 기업으로 받았고, 여러분과 나도 그 이름을 기업으로 받았어요. 우린 그 이름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얻었어요. 


구약 때는 여호와라는 이름을 불렀는데 그를 "주여!" 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녀의 권세를 받지 못합니다. 




[히브리서 1:13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느뇨]




높은 의자에 앉을 때 발을 올려놓기 편하게 밑에 발 받치는 상이 발등상입니다. 


하인을 엎드리게 해 놓고 발을 올려놓듯이, 원수를 엎드리게 하고 발을 그 등에 올려놓는다는 말이에요. 그렇게라도 너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고 그렇게 말한 적이 있느냐? 하는 겁니다.


천사는 구원자가 될 수 없어요.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없어요. 


그런데도 지금도 여전히 천사를 보고 싶고 흠모하고 얼마나 그럽니까?


계시록에서 천사를 경배하려 하니, 말립니다. 이와 같이, 천사는 우리가 숭배하는 자가 아닙니다. 천사를 숭배하거나 천사 앞에 일부러 겸손한 체 하면 너희 상을 다 잃어버린다는 것이에요. 생명과 면류관을 다 잃어버린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린 율법에서 완전히 떠나서 성령의 인도만 받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에요. 지금.




이제 인간이 있기 전에, 하늘을 창조하시고 천군천사를 다 창조하셨어요. 


그리고 우주에 대해, "있으라. 있으라. 나타내라!" 했잖아요. 이미 만들어 놓고, "있으라, 나뉘어라".. 그 속에서 다 드러나게 하시는 것이에요. 하늘의 별을 우린 볼 수 없죠. 그런데 하늘을 창조하셨어요. 아들을 위하여 상속하려고 후사로 세우시고. 




[로마서 8: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하나님의 후사들인데, 그리스도가 하늘에 오르시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으셨습니까?


너희도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가 되기 위하여 고난을 함께 받으라는 겁니다. 십일조와 하나님께 작정한 월삯은 의무니까 하라고 하는데, 헌금을 강요한다고 나쁜 놈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목사가 나쁜 놈이 되면 교회가 살아날 수 없어요. 나쁜 놈이 어떻게 인도할 수 있어요? 이게 참 답답하죠. 


정말 오늘 여러분과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받기 위하여!


그와 같이 하기 위하여! 고난도 그리스도와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재 받는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말이에요. 우리가 받는 고난을 값으로 쳐서 십억이라 합시다. 그 앞으로 받을 영광은 몇 경이 되니 비교가 될 수 있느냐 말이에요. 




그런데 고난에 참여하자 하면 아주 짜증이 나죠?  그러니 하나님을 욕할 수 없으니, 목사나 욕하죠. 헌금을 강조한다고. 


캐나다, 토론토에 가면 선교교회가 있습니다. 60년대에 그 사람의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교인들이 꽉 찼는데, 한 3000명. 헌금을 강조 하는데 네 시간을 했어요.


그날 헌금하는데 모자랐던 것 같아요. . 또 거두었어요. 헌금을 채우기 위해 네 시간을 하더라 말이에요. 60년대에 내가 책을 읽었을 때, 헌금을 강요하는 것은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이에요. 수십 년이 지난 그때에도 역시 헌금을 강조하더라고요. 그래서 3000명을 선교사로 파송했더라고요. 우리 교회에서 그렇게 하면 다 떠나고, 목사 얼굴 보기도 싫다고 할 거에요. 부럽더라고요. 우린 왜 그렇게 할 수 없는가! 그 설교에 뭐라 하니, "새 차를 사지 말고, 헌 차를 사고 헌금하게 하라! 적은 집으로 줄이고 헌금하라! 이사 못 가게 하려고 헌금하게 하라. 이사 가면 교회가 멀어지니 그가 죽으니 헌금하게 하라."


그리스도는 피로 사셨으니, 물질을 드린 것은 마땅합니다. 


우리가 건축헌금이라고 일부러 하지 않아도 건축을 해 왔어요. 미리 해가는 방법으로 시무언의 영감을 가지고 이렇게 되어 온 것입니다. 어느 교회도 헌금 한 것으로 예배당을 지으려면 못 짓습니다. 가평도 그 교인 헌금 한 것을 하나도 쓰지 않고, 모아서 하면, 90년 걸립니다. 


몽산포는 240년 걸립니다. 돈 한 푼 안 쓰고 240년 모아야 하나 지어요. 그것을 하나 쓰지 않고 땅을 사고 모은 것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교회에 일을 너무 많이 했다고 망할 놈이라 하면 되겠어요?


우리 교회는 열심히 헌신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이다음에 주님 앞에 가서 받을 영광이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를 얻을 영광이 있어요. 


성도들도 함께 보좌를 얻는단 말이에요. 우리가 영광 받을 보좌도 있단 말이에요. 그 중 아버지 집에 들어갈 자들이 있고, 성 밖에 있을 자들이 있다는 것이에요. 그날에 밖에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간다는 것은 지옥 간다는 말이 아니에요. 차별이 있다는 겁니다. 구원은 받았는데, 성 안에 아버지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쫓겨난다는 것이에요. 구원은 받았는데, 아버지 집에 들어가지 못해 후회하고 '내가 왜 그랬을까?' 하고 후회하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가 되기 위해서 그리스도와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피 흘리고, 몸을 찢고 온 인류에게 나눠줬는데, 우리는 인류에게 나눠 주지 못하지만 우리가 피땀 흘려서 애써서 헌금한 것을 모아서 우리 뒷사람들도 은혜 받고 선교도 할 수 있도록 되어 나가야 합니다. 


만유의 후사! 아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있으니, 그를 위하여 지은 것입니다. 


아들을 위하여, 말씀을 위하여!


그 말씀이 이 땅에 오셨어요.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사람들이 매부리코에 이마가 조금 벗어진데다 머리카락이 좀 긴 성화를 연상합니다. 우리가 그를 보니 독생자의 영광으로 보여야 하는데, 주님을 보고 싶어 할 때 전부가 다 매부리코에 머리가 어깨로 내려온 그를 생각하지 않습니까?


기독교는 성화를 그려 넣지 않아요. 감리교는 가끔 그려 놓는데, 그거는 성경의 위반이에요. 


가톨릭은 교인들이 글을 모르니, 조각을 해서 성경 대신 읽게 하고 보게 하려고 , '이렇게 죽으셨구나!' 알게 하려고 한다는 것이에요. 조각을 해서 형상을 만듭니다. 그 후에 동방교가 일어나서 '그것은 모순이다, 우상이다!' 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성화는 동방 교에서 나온 것이에요. 후광도 만들고. 


그래서 그런 성화들이 많이 나왔죠. 




그러나 그 의식이 천주교와 거의 비슷한데, 조금 발전한 거죠. 그러나 기독교는 그거 없는 것이에요. 


성령이 눈에 보입니까? 우리가 그를 보니, 유대인이나 어디가 아니고,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정말 예수에게서 은혜와 진리만 들어야 합니다. 그게 주를 본 사람이에요. 기도 할 때 어떤 형상이 떠오르길 바라지 말고. 환상이 그렇게 나타날 수 있어요. 그렇지만 그와 똑같지 않습니다. 


우린 그에게서 독생자의 영광을 봐야 하고, 그에게서 은혜와 진리가 우리 속에 들어와야 합니다. 


눈에 색깔이 들어오듯이, 진리와 은혜가 우리 속에 들어와야 예수를 보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니, 아들을 위하여 최초 만유라고 하는 피조 계를 만드신 겁니다. 


아들은 만유의 하나님이세요. 그러니까 하늘과 우주! 이 만유의 하나님이시란 말이에요. 


아버지는, 만유의 주가 아니라, 그냥 아버지에요. 


너무나 크시고, 너무나 크신 분이란 말이에요. 그는 영이세요. 그러나 아들은 만유의 주. 만유의 하나님이시란 말이에요. 


사람들이 만왕의 왕이라 하니, 아버지를 생각하는데, 아버지는 만왕의 왕이 아니에요. 


하늘의 권세와 영광을 다 내게 주셨다고 예수 말씀하셨죠. 만왕의 왕은 주 예수를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에요. 하나님아버지. 


거기다 뭘 더 영광 돌린다고 붙이면 붙일수록 잘못하는 것이에요. 아버지. 


예수는 아버지에 대해서, 그렇게 크게 여기는 것이에요. 그는 아버지세요. 


만왕의 왕, 만유의 주, 하니까, 어떤 피조 계를 붙이는 이름을 말하면 아들을 말하는 겁니다. 




예수는 만유의 주시다!! 그는 만유의 주가 되신단 말이에요. 


아버지는 영이세요. 그래서 예배할 때 아버지를 만왕의 왕이시여, 만유의 주시여 하지 말고. 그는 아버지는 영이십니다. 아버지에요.


그러나 아들은 상속받은 자로서 만유의 왕, 만국의 왕.  


아버지는 만왕의 왕이 아니에요. 




이제 기도하십시다. 


아버지 앞에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


예수 이름으로 아버지께 기도하라는 것이에요. 그러면 아버지가 영광을 받으시고, 내가 이를 시행하리라 했어요.


녹취록 - 다운로드


녹취자 : 강남예배당 이길복 집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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