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황된 하늘을 아버지라 공경하며 받들고 .... 종교의 폐단을 조심하라”
1884년 ‘한성순보’에 기록된 개신교에 관한 기사의 일부분이다. 불과 130여 년 전 고종의 조선은 서양문물을 비롯하여 개신교를 거부하는 정서가 강했다. 위 한성순보에 게재된 기사만 보더라도 당시 개신교 상황을 한 번에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종의 시대에 개신교가 급속도로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선교사들의 ‘사랑의 수고’가 있기에 가능했다. 그 당시 조선에 온 선교사들은 개인의 구원 운동과 더불어 조선의 사회운동을 적극적으로 진행하였다. 단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회 전반적인 환경을 개선시키려 노력하였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성경 번역, 학교설립 등 교육 사업을 중심으로 조선 백
성의 무지를 깨우치려 했고, 의료 사업을 중심으로 질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구하였으며, 잘못된 관습과 법을 바로잡아 근대화를 이끄는 사회운동을 진행하였다. 또한 독립운동, 국권 수호 운동, 국채보상운동 등 국가의 명운을 비는 항일 운동도 진행하기도 했다. 개신교의 이러한 다양한 사랑의 수고는 결실을 맺었고 조선에 복음이 안착하는데 큰 공을 거두었다.
이러한 사랑의 수고를 멀리서 찾을 필요는 없다. 이 천년 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무지몽매한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파하심은 물론이고 예수님 또한 사랑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셨다. 이방인의 땅까지 가서 귀신 들린 자를 치료해주셨고(막 5), 배고픈 자들을 먹여주셨고 아픈 자들을 치료해 주셨다. 그리고 그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과 초대교회는 마찬가지로 많은 이에게 사랑의 수고를 마다
하지 않음으로 전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게 하였다.
우리는 두 가지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아야 한다.
첫째, 나는 복음을 전하고 있는가?
둘째, 나는 사랑의 수고를 하고 있는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기본이거니와 그에 수반되는 사랑의 수고를 병행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기본 역할이다. 우리는 다음주부터 2주에 걸쳐 대학청년 연합 전도집회를 진행한다. 이 일에 있어 여전히 나는 방관자로 참관자로 지켜볼 것인가 아니면 힘을 다해 복음을 전하며 사랑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남을 것인지는 우리의 결정에 달렸다.
우리교회 재건의 시작은 대학청년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대학청년들은 사랑의 짐을 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사랑의 수고를 하는 것, 사랑의 짐을 지고 가는 삶. 우리 교회 재건의 시작이다.
2019. 3. 3. 담당목사 박원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