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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백만 년 전 인간의 소비생활을 단순하게 정의해보면 먹고살기 위한 ‘생존’이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수렵생활을 통해 고기와 각종 과실을 얻어 그날 소비함으로 단순한 생존을 이어갔고 그렇게 인류는 200만 년 이상 이 땅에서 살아왔다. 그러나 불과 1만 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인류에게 큰 변화가 일어났는데 바로 ‘농사’의 시작이었다. 인간은 이때부터 수렵의 성패로 하루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삶이 아닌 풍요로운 수확과 저장능력을 통해 먼 미래의 삶을 생각할 수 있는 삶으로 변화되었다. 이때부터 인간은 하루를 위한 생존을 하지 않게 되었다.


농작의 결과는 실로 대단했다. 동물이나 먹을 것을 따라 이동하며 삶의 터전을 정해야 했던 시절과 달리 농사의 필수 요소인 땅을 기반으로 집을 짓고 사는 정착생활이 자리 잡혔고, 이때부터 사람들은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살았던 씨족사회의 모습에서 다른 사람과의 여러 이해관계에 따라 형성된 부족 사회, 더 나아가 부족국가로서 모습의 틀을 비로소 태동시키게 된 것이다. 또한 이때로부터 인간은 더 많은 곡식을 저장할 방법과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고안해 내기 시작했다. 결국 많은 땅을 가진 사람은 많은 곡식을 얻을 수 있었고 땅이 없는 자는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었다. 수렵생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즉 모두에게 공평했던 소비의 모습이 몇몇 사람에게 편중되기도 했고 축적된 부를 잘못 사용하는 물질 만능의 문제를 촉발하기도 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올바른 소비의 행태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올바른 모습은 필요를 따라 하루하루 주어진 것을 소비하는 다소 원시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많은 것을 저축하여 사는 것이 아닌 이른 아침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만나’처럼, 주기도문에서의 ‘일용할 양식’처럼 하나님이 매일 주시는 것에 감사하여 하루하루 사는 삶을 우리에게 원하신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우리의 모습은 다소 성경적이지 않다. 소비의 주된 목적은 성경적으로 보면 편리와 사치가 아닌 육체의 생존에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너무 극단적인 생각이기에 조금 양보하여 생각해 볼 때 의식주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다면 굳이 다른 것에 과소비할 이유와 명분을 찾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을 단정히 꾸미되 과하게 치장하지 말고 맛있는 것을 먹되 굳이 비싼 것을 먹을 이유가 없고, 편리한 것을 소비하되 사치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소비는 내게 주어진 물질이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감사하고 그것에 대한 감사로 매일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이다. 오늘부터라도 늦지 않았다. 조금 적게 소비하고 알뜰하게 물질을 사용함으로 하나님께 귀한 것을 드리는 대학청년들이 되길 소망해 본다.



2020. 11. 15. 담당목사 박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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