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의 두려움

by 행정본부 posted Sep 1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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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 3:9-10).”


하나님과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어느 것 하나 어려움 없이 친밀함과 사랑의 관계를 맺고 있었음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다. 아담은 자신의 창조자이시며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 숨김없이 자신의 전부를 공개했고, 하나님은 아담에게 여호와의 사자를 통하여 세세히 말씀하셨으며 아담을 통해 이루어 가실 당신의 경륜 작업을 진행하셨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기에 두 영의 인격적인 관계는 거짓이 없고 숨길 것이 없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상적인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영적 관계였다.


하지만 아담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이러한 최상의 영적 관계가 깨어지고 만다. 아담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숨고 말았다. 무엇이 그렇게도 두려워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었던 것일까. 창세기 3장 9-10절 말씀을 보면 다소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아담이 숨게 된 이유에 대해 우리는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아담이 벗음으로 부끄러워 숨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두려워하여 숨었다는 것이다. ‘벗었으므로 부끄러워 숨었다’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관념이라면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다’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사실이다. 이러한 생각의 차이는 우리 신앙생활에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한다.


첫 번째, 아담은 벗은 것에 대하여 아무런 부끄러움이 없었다. 아담은 영이 없는 인류(호모사피엔스)에서 택함을 받아 문화생활을 하던 자였기에 문화생활을 영위하며 옷을 입어 봤던 자였고 ‘벗은몸’에 대한 부끄러움의 개념이 있던 자였다. 하지만 아담은 영을 부여받고 벗은 몸일지라도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생활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예수 안에서 삶이란 이전의 육체 지향적인 삶보다는 모든 면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영적으로 변화된 삶을 지향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두 번째, 아담은 육체의 사람으로서 단순히 벗고 있는 자신의 육체가 부끄러워 숨은 것이 아니라, 영의 사람으로서 죄를 범한 결과 자신이 벗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는 본능적으로 하나님과 관계의 변형이 생겼다는 것을 인지하여 아담은 두려워 숨었다는 사실이다. 한 마디로 아담은 자신의 육체의 상태보다는 영적 상태에 우선적인 가치를 두고 삶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물론 한 번의 실수로 인하여 그러한 하나님과의 이상적인 영적 관계가 깨지고 말지만 우리는 그가 어떤 것에 집중하며 살고 있었는지 깊게 들여다 봐야 한다.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인으로서 육체가 당하는 수치와 부끄러움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깨지는 것을 더 두려워하는가. 전자와 후자의 선택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진정한 삶의 변화가 나에게 있는지를 판가름해 볼 수 있는 좋은 기준이 될 것이다. 비단 육체의 수치와 부끄러움이 없는 삶이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육체의 모습보다는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소중히 여기는 대학청년들이 되길 간절히 소망해본다.




2020. 9. 6. 담당목사 박원영